정주김씨(貞州金氏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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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대춘(金大春): 자 원백 (字 元伯) (1574~1653) | |
수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(壽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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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득엽(金得燁): (1574~1698) | |
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(通政大夫 僉知中樞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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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수천(金壽千): 자 명고 (字 命考) (1628~1698) | |
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(通政大夫 僉知中樞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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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이강(金以綱): (1677~1721) | |
절충장군(折衝將軍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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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진광(金振光): 자 여진 (字 汝振) (1655~1697) | |
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(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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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시광(金始光): 자 도경 (字 道卿) (1686~1732) | |
1728년 무신등무과(戊申登武科) 분무원종3등공신(奮武原從三等功臣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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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형운(金亨運): 자 태보 (字 泰甫) (1682~1742) | |
등무과(登武科) 분무원종공신(奮武原從功臣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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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형태(金亨兌): 자 중설 (字 仲說) (1686~1756) | |
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(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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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형기(金亨基): 자 덕수 (字 德叟) (1701~1769) | |
1736년 병진등무과(丙辰登武科)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(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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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한필(金漢弼): 자 여범 (字 呂範) (1711~1756) | |
절충장군(折衝將軍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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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재옥(金載玉): 자 사규 (字 士圭) (1725~1792) | |
1752년 계유등문과(癸酉登文科) 통훈대부호조정랑 겸춘추관기주관(通訓大夫 戶曹正郞兼春秋館記註官) | |
공은 성균관에 있을 때 특별한 뜻을 가지고 역경(易經)의 건괘(乾卦)를 강론하여 임금의 칭찬을 받고 뒤에 또 전강(殿講)성균관(成均館)유생 중(儒生中)뛰어난 사람을 모아 임금이 친히 행하던 시험에 으뜸이었고 남읍(南邑)에 재임시 손름(損廩)(공익을 위하여 벼슬아치들이 녹봉(祿俸)의 일부분을 걸어 내어 보탬)으로 학재(學財)를 삼아 몽사(蒙士)를 교양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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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재연(金載淵): 자 성양 (字 聖養) (1724~1777) | |
1744년 갑자등무과(甲子登武科)통훈대부 행제주목판관(通訓大夫 行濟州牧判官)(1750~1752在任) | |
공은 제주목의 판관으로 3년 동안 재임하며 흉년으로 많은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함을 측은히 여기고 선정(善政)을 베풀어 목장의 마축이 번성하게 되니 도민(島民)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. 조정(朝廷)에서 듣고 내직(內職)으로 승진되어 돌아올 때 온 백성이 다 나와 전별(餞別)을 아쉬워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비석을 세워 은혜를 추모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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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상질(金尙質): 자 윤회 (字允繪) (1808~1883) | |
1835년 을미등무과(乙未登武科) 절충장군 행용양위부사과(折衝將軍 行龍驤衛副司果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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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상경(金尙絅): 자 응장 (字 應章) (1786~1849) | |
1807년 정묘등무과(丁卯登武科)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겸 오위장(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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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상기(金尙祺): 자 지서 (字 岐瑞) (1797~1861) | |
통훈대부 행청하현감(通訓大夫 行淸河縣監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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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제승(金悌昇): 자 치도 (字 致道) (1812~1898) | |
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(嘉善大夫 同知敦寧府事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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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윤렬(金潤烈): 자 덕여 (字 德汝) (1862~1939) | |
중추원의관(中樞院議官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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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동진(金東軫): 자 창재 (字 窓哉) (1815~1893) | |
1843년 계묘등무과(癸卯登武科) 통정대부 대흥산성중군(通政大夫 大興山城中軍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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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창열(金昶烈): 자 명숙 (字 明叔) (1835~1915) | |
천안군수 (天安郡守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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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기경(金基暻): 자 윤명 (字 允明) (1872~1909) | |
가선대부 오위장(嘉善大夫 五衛將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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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료: 해풍김씨대동보 세덕록, 한국성씨총감(해풍김씨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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